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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효성 그룹 창업주 생가 탐방,
       K-기업가정신(1/4)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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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기획 전 구성원은 창립 30주년인 2023년을 마무리하며, 지난 12월 19~20일 양일에 걸쳐 ‘K-기업가정신을 배우다’라는 주제의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경남 산청에 자리한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 탐방을 시작으로, 의령의 호암 이병철 생가, 함안의 만우 조홍제 생가, 진주시 지수면 승산부자마을과 K-기업가정신센터를 돌아보는 뜻깊은 여정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GS그룹 창업정신에 관한 학술 포럼을 주관하는 한편, 기업가정신 전문도서관에 다니기획 발간 사사를 기증하는 등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에 뜻깊은 여정의 의미를 기리고 기록하기 위해 ‘K-기업가정신을 배우다’라는 주제의 탐방 기사를 4개 시리즈로 나누어 구성했습니다. 다니기획의 전 구성원이 함께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공유하며, 전문성과 역량을 좀 더 발전시키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한 기업가정신
삼성·LG·효성 그룹 창업주 생가를 돌아보며 그들의 삶과 철학 엿보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한 창업주들이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LG그룹의 창업주 연암(蓮庵) 구인회, 효성그룹의 창업주 만우(晩愚) 조홍제가 그들입니다. 이 세 명의 생가를 돌아보면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한 K-기업가정신의 정수를 엿볼 수 있습니다.

 

▲호암 이병철 생가와 입구


호암 이병철의 생가는 경상남도 의령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호암 선생은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한옥에서 1910년 태어났습니다. 그는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래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을 일으켰습니다. 1980년대에는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여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발전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에 있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다.”

- 1976. 11. ‘나의 경영론’(전경련 회보)에서

 

 ▲호암 이병철 생가의 '광'

 

호암 선생은 태어날 때부터 천석꾼이었고 처가는 만석꾼이었습니다. 이미 부(富)를 쥐고 태어났던 그에게는 부를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암 선생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아차리고,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불모의 한국경제가 선진국 수준에 이르기까지 국가경제 발전을 선도하였습니다.

  

연암 구인회의 생가가 자리한 승산마을과 방어산. 마을 곳곳에 대나무가 많다.

 

연암 구인회의 생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승산마을은 600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 위치한 100년 전통의 지수초등학교는 1980년대 한국 100대 재벌 중 30여 명을 배출한 기업가들의 성지입니다. 아름다운 돌담길을 걸으며 한옥마을의 정취를 느끼다 보면 마을 남쪽에서 연암 선생의 생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손대지 못하는 사업을 착수해서 성공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생각해 봐라.”

- LG그룹 홈페이지 연암 구인회 창업 회장 어록에서

 

 ▲만우 조홍제 생가와 마을 길


만우 조홍제 생가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백이산 자락에 자리합니다. 만우 선생은 강직한 선비의 가풍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한학을 배우던 만우 선생은 열아홉이 되어서야 중앙고보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접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만우’라 일컬었으니 ‘늦되고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나이 서른에야 대학을 졸업했고, 마흔이 넘어 사업에 입문하였으며, 쉰여섯이 되어서야 자신의 독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몸에 지닌 작은 기술이 천만금의 재산보다 더 귀하다.”

- 만우 조홍제 어록에서

 

▲만우 조홍제 생가의 장독과 처마

 

만우 선생은 1962년 효성물산을 모태로 독자 사업을 시작하여 조선제분, 한국타이어, 대전피혁 등 당시 부실기업을 맡아 정상화했습니다. 1966년에는 동양나이론을 설립하여 효성그룹의 토대를 이루었습니다. 독자적인 기술개발 능력으로 우리나라 화섬산업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즉 눈앞에 이익이 보일 때, 의리를 생각한다. 이는 만우 선생의 기업가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빨리’ ‘크게’ 이윤을 내는 것만을 목표로 한 기업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항상 이익이 있을 때 그것이 의로운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설탕 수입을 하던 시절, 설탕값이 폭등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두 약속도 계약이라며 오르기 전 가격으로 거래한 일화는 그의 이런 정신을 잘 나타냅니다.

 

만우 선생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습니다. 6·25전쟁으로 유실된 군북초등학교의 교사를 지어 재건하고 영남장학회를 만들어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배명학원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호암, 연암, 만우의 K-기업가정신은 그들이 태어난 땅과 역사에서 잉태됐습니다. 그들의 생가를 둘러보는 일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시대를 이끈 기업가들의 정신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남보다 앞서 국가의 경제 발전을 이끈 그들의 철학은 시대를 초월한 생각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암 이병철 생가(왼쪽)와 만우 조홍제 생가(오른쪽)에서 다니기획 구성원 단체 사진


▲호암 이병철 생가(왼쪽), 연암 구인회 생가(가운데), 만우 조홍제 생가(오른쪽)에서 부를 기원하는 다니기획 구성원